꽃다운 내 나이 26세때 사진
저 소를 부를땐 매미라고 불렀다.
1977년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때, 우리 시골동네에 보건소를 지었는데,
난 겨울방학을 이용해 그 건설현장에서 두달간 일을했다.
추운줄도 모르고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줄 몰랐다.
그 당시 목수 데모도라 했는데 하루 9천원을 받았다.
그러다가 시멘트 비비는 일을 했는데, 이건 힘들다 해서 1만2천원을 줬다.
두달간 일해서 모은돈이 50만원이 넘었다.
그당시 공무원 월급이 3만5천원~7만원정도였으니, 난 짧은시간에 꽤 많은돈을 번것이다.
그 돈을 다 아버지께 드렸더니, 아버지가 엄첨 기뻐 하시면서
그 돈으로 나를 데리고 춘천 우시장에 가서 뿔이 3센티정도 난 어뚜레기 송아지를 샀다.
거기서 집까지 5천원을 주면 용달차에 실고 올수가 있었는데,
그 5천원이 아까워 7시간에 걸쳐 집으로 걸어왔다.
나야 상관없지만, 그 어린송아지가 다리가 아파서 20리 남겨놓은 광판리라는 동네에서
주저앉아 일어나지를 않아서 억지로 달래서 일으켜 세워서
집까지 왔다.
난 그 송아지에 애착이 들어서 이름을 매미라고 지어주고,
매일 꼴을 베어다 주고, 목욕까지 시켜 가면서 정성을 들여 키웠다.
그 당시 난 집이 가난해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그 당시 최고 인기를 끌었던
열관리 시험을 보기 위해서 보일러가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책을 사다가 독학을 했다.
이 소를 산으로 데려가서, 고삐를 양쪽 뿔에 둘둘감아놓고 풀을 뜯어먹으라 놓아주곤
난 그 자리에서 책을 읽곤 했는데,
그러다 잠이들어 해가지기 일수...
매미는 내옆에서 20미터 이상을 떨어지지 않고 풀을 뜯어먹다가
해가지면 내옆에 와서 "이제 집에 가자."고 잠자는 나를 핥아 깨웠다.
이때 나의 친구는 매미였고, 매미의 친구는 바로 나였다.
난 매미의 행동을 보고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고, 매미는
내가 하는 말을 다 알아 들었다.
.......................
그렇게 몇년을 정을 쌓아 오다가
내 나이 스믈일곱때 춘천 어느 회사에 취업이 되어 난 매미와 혜어졌는데...
내 나이 서른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 돌아가신 날 매미의 눈가에도 눈물이 숭얼숭얼 흘러서
난 매미를 안고 쓰다듬으며 달래주었었다.
집에는 이제 엄마 혼자만 남아 계셔서, 엄마 힘으로는 도저히
소를 거둘수 없어서 고민하다 못해 아랫마을 안씨네 집에다
팔아야 했는데...
그해 겨울 매미는 땅에있는 대못을 주워먹고 자결을 했다.
아마 먼저의 주인이 그리워 그랬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가 참 그립고 행복했던것 같다.
매미가 엄청 보고 싶었는데, 앨범을 뒤져보니 매미랑 찍은 사진이 있어서
이 블로그에 저장하려 한다.
눈물이 나서 막걸리나 한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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